✦신간 읽기
✦잡담
사인회 때 <상처에 대하여>에 사인을 받았었죠.
만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책이겠네요…. 사실 글을 받기 전까지는 <상처에 대하여>가 신간의 제목이 아니라 이전에 낸 책의 제목으로 상정한 것이라 멋대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 사인회… 신간 발표회였군요?!
지금 그때 역극이나 관련 편지 중에 말실수한 게 없나 몹시 걱정됩니다. (다시 볼 용기는 없네요.)
퍼블트로
단편집같은데에 한번에묶여나오겠지............... |
이런 말을 썼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표제지에 '상처에 대하여'라고 적힌 책에 사인을 받았으니
단편 그대로 출간했으려나요. 얇은 시집 같은 모양새이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본편
내가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7살이 되던 해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날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니가타현의 작은 촌락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1.
이 소설의 화자가 유메노 겐타로라고는 한 줄도 쓰여있지 않았지만, 첫 줄을 읽자마자 이거 선생님이잖냐… 하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과몰입한 나머지 이걸 자꾸 공식 과거로 생각해 버려서 머리를 치고 있네요
H력에 사는 인간들은 이 글의 화자가 <시나리오 라이어>의 화자와 동일 인물이다. 라고 느낄 것 같네요. 소설 도입부의 '거짓말'이란 단어부터 시작해서, 소설의 배경설정이 <시나리오 라이어>의 '설국', '노부부'와 연관되었으니 … 빼박.
그래서 사람들이 이 글의 화자를 유메노 겐타로로 볼 것이냐….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 같네요. 이미 시나리오 라이어에서 구라삥뽕입니다~ 라고 하였으니 '차기작 인물의 이야기를 가사로 만든 걸 거야!' 라고 추측한 사람 또한 많을 것 같아서.
힢스터 회보에서도 유메노 겐타로의 작품에 대하여 독자의 '유메노 겐타로 본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냐.' 라는 반응에 '창작물일 뿐이다.' 라고 답변하였다는 글을 보았는데, 이것과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와중에 <시나리오 라이어>의 화자는 첫 거짓말을 10살 때 하였고, 이 소설의 화자는 7살에 첫 거짓말을 한 것이 … 이 또한 선생님의 교묘한 장난(거짓말) 같아서 유쾌했습니다.
예상 SNS 반응
유메노가 또 유메노 했다 |
신이 나서 형과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겨우내 꼼짝없이 집에 갇혀 난로에 손을 녹이며 읽었던 책을 또 읽는 일은 어린아이에게 고된 일이었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1.
소설에 형의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네요. 화자는 선생님이다. 라고 인식된 시야로 보아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 유메노 가짜타로는 이전에도 쌍둥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자주 쓴 걸로 아는데,
그때도 과연 동생 역에 자신을 투영했을까요?
스텔라 등을 생각하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안 들키나
5ch 같은 데에 올라와서 분석될 것 같은데
딴 길로 샜네요. 돌아가겠습니다.
그날도 바람이 꽃잎을 코앞까지 가져다주었다. 발끝에 떨어진 꽃잎을 줍느라 몸을 숙이면 할머니는 조심스러웠던 걸음을 더욱이 늦춰 내가 뒤처지지 않게 하셨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주워가던 꽃잎은, 길을 나아갈수록 더 많아져 도저히 주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면 꽃잎 줍기에 흥미를 잃고 지금까지 모은 것을 팍 뿌려 흩날리는 것을 보는 게 그 시절 나의 재미였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2.
2~4쪽의 할머니와 절까지 가는 길의 묘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요루시카의 <꽃에 망령>의 기획 의도가 떠올랐습니다.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진 곡을 만들고 싶다. 라는 생각에서 탄생한 곡이라고 하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등나무꽃, 상록수, 인왕, 그것들을 대하는 화자의 행동.
이것들을 나타낸 모든 문장이 참 아름답고 평화롭고 순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를 따라서 뛰어가며 나의 작은 발이 팟, 하고 지면에 닿을 때 발 주변의 꽃잎도 작게 미동이 일었는데, 재밌어서 몇 번이고 개구리처럼 점프해 바람을 일으키곤 했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2.
개구리처럼('개구리' 같다는 부분이 좋았네요. 단순히 개구리타로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앞의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과 이어지는 점도 좋았습니다...) 폴짝 뛰는 어린 화자의 주위에서 춤추는 꽃잎과 그걸 지켜보며 웃으시는 할머니를 그린 풍경이 상상되어 행복했어요.
거짓말하면 지옥에 떨어져 혀가 뽑힌단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워 절에서 나올 때도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4.
이랬던 아이가 거짓말쟁이가 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아니 이거 소설이지
하지만 실제 유메노 가짜타로 또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이 부근에서 퍼뜩 생각난 것이 이리에와 선생님이 떨어질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 한 편지인데, 이 편지를 소재로 글을 적기 시작하신 걸까요? 그리 생각하니 즐겁습니다...:)
나는 또래에 비해 키도 작고, 몸짓도 어수룩한 것이 사실상 민첩한 편은 아니었으므로 노력은 금방 수포로 돌아갔다. (중략) 형은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나무에 올랐고, 내가 딛지 못한 기둥마저 밟아 손을 뻗었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5~6.
책을 읽던 중. 형을 화자보다 연상으로 생각했다는 걸 눈치챘는데, 아마 이 부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 나오는 형이 정말 유메노 형이라면… 둘의 관계가 쌍둥이임을 밝히지 않기 위한 서술트릭같아서 재미있네요. 형이 화자와 신장 차이가 난다는 정보는 적혀있지 않음에도, 저도 모르게 형을 크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론 신장 차이가 날까요…
물건을 훔치는 도둑은 물건에만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망을 보는 도둑은 전후좌우 모든 것을 살피고, 귀를 쫑긋 세워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 눈이 백 개인 도도메키百々目鬼라도 되어야 하는지 고민인 것이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5.
화자의 곤두선 신경에 더욱 이입할 수 있는 문장이라 좋았습니다.
보통은 망을 보는 도둑의 상황을 신경쓸 일이 없으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네?'하고 저도 더욱 조마조마해졌습니다.
자랑스러운 형으로서 성공적으로 도둑질을 수행하는 것을 보좌하기 위해,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6.
아 처음에는 단순히 '자랑스러운 형'이라는 말에 울컥했는데
다시 보니 굉장히 언벨런스한 단어의 조합이라 재미있어요.
자랑스러운 형의 성공적인 도둑질이라….
그 순간 그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눈앞에 잔뜩 꽃잎이 흩날렸다. 햇빛으로 쨍하게 시야가 하얘졌다. 눈을 감았다 뜨니 그는 그늘에 엎드려있었다. 꽃잎들은 한 박자 늦게 그의 등으로 내려앉았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6.
화자의 눈앞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잎, 잎 모양으로 그림자진 형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 그 위에서 눈부시게 내리쬐는 빛. 눈부심에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빛. 겨우 눈을 뜨니 쓰러진 형과 그의 등 뒤에 춤추듯 팔랑팔랑 내려앉는 꽃잎.
슬로우모션으로 상상됩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굉장히 예쁜 풍경이네요….
그랬더니 그의 몸이 들썩였다. 그리고 슬금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
"…흡, 콜록, 푸하, 하하하!"
참던 숨을 토해내며 형은 웃었고, 나는 놀라고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7.
... 삐꾹. (등을 눌리자 소리를 냈다. 그러나 곧 못참겠는지...) ...흡, 하!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숨을 뱉었다.)
夢野幻太郎, 역극 #04.22
죽은 척을 하는 책 속의 유메노 형과 그것을 따라한 선생님.
유메노 겐타로의 시체.
진짜 유메노 겐타로.
…
좀 울고 싶어요
거짓말쟁이. 원망하는 것처럼 울음과 내뱉은 나의 말에 형은 무척이나 다정한 표정으로 괜찮다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느낀 거짓말은 상냥함이다. 사람을 무엇보다 상처입히는 것은 상냥함이었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8.
동생이 자꾸 억지로 이끌어 가는 데도 아픔을 티 내지 않는 상냥한 형이 좋아요…
이 부분이 특히나… 제 안에서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제대로 흐려주는 것 같습니다.
형을 위해 형의 껍데기를 쓰고 상냥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유메노 ■■■. 결국 많은 사람을 상처 입힐 거짓말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이때부터 형에게서 이 상냥한 거짓말을 배운 것 같아서….
그는 형이 깨어나는 날. 형을 향해 다정한 표정으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를 두고 혼자 천국에 갈 수는 없다. 지옥이라도 형과 같이 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9.
지옥을 기꺼이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이라면, 심판을 받고 싶은 인간이라면, 즐겁지는 않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夢野幻太郎, 편지 #25
이 문단 전에 울먹이면서 형의 거짓말을 돕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아이는 너무 순수한 나머지 무서운 생각을 할 수 있네요.
이 부분 또한 제 안에서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너, 너어… 이 나이부터 지옥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 거냐...?! 같은 식으로…
형에 대한 죄책 때문에 같이 지옥에 가겠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형을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요…
하…
선생님의 지옥에 가겠다는 마음이 소설에서도 느껴져서 마음이 싱숭생숭 복잡합니다.
이렇게 상냥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옥에 가는 것은 불합리하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9~10.
잘못을 덮어주고 몰래 약을 발라주는 모습을 보고 '그렇다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지옥에 갈 거야.' 라고 생각한 걸까요?
맞다면 조부모님의 상냥한 거짓말을 예외로 두지 않으면서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배운 대로 흡수하는 순수한 아이의 생각 그대로네요 … 좋아요.
그것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夢野幻太郎, 『傷について』, p10.
정말 '밝은 이야기이면서도 어딘가 적적한 분위기가 감돈다'… 로 총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 어쩜 이렇지? 너무 좋아요.
유메노 겐타로의 신간을 볼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고 … 영광이었습니다.
역극이나 편지에서의 요소가 부분부분 들어간 덕에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마치 제가 좋아하는 게 가득 담겨 있는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좋아요. 알려드리죠. 첫번째 소설의 소재는 <회상> 입니다. 두번째 소설은... <회의> 겠네요.
夢野幻太郎, SNS #01.18
멋진 글 감사합니다. 차기작도 기대하겠습니다.
라곤 말했지만… 부담 갖진 말아주세요. 쓰지 않으셔도 좋으니 어디까지나 선생님께서 편하신 대로! 원하시는 대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